[안내서] 회수팀 신입을 위한 안내서 -001
제1화: 빈 자리
시공간환경 회수팀 신입 교육자료 / 분실 시 우주표준법 제19조에 따라 처벌됨
환영한다, 신입.
오리엔테이션은 짧게 끝내겠다. 우리는 청소부다. 거창하게 말하면 시공간환경 회수팀이고, 줄여서 회수팀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인류가 시간과 차원에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다.
우주표준법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지적 존재도, 자신이 지나온 우주를 지나오기 전보다 더럽혀서는 안 된다." 멋진 문장이지. 인류는 시간여행 장치를 발명한 지 40년 만에 이 조항을 우주에서 가장 많이 위반한 종이 됐다.
그 위반의 결과물을 줍는 게 네 일이다. 익숙해질 거다. 다들 그러니까
한 가지는 지금 일러둔다. 회수팀은 네 우주만의 조직이 아니다.
차원법이라는 게 있다. 우주표준법보다 위에 있는, 모든 차원에 걸쳐 단 하나뿐인 법이다. 그 법에 따라, 회수팀은 셀 수 없는 차원의 인류가 공동으로 세운 조직이다. 우리는 우리를 '다차원 인류'라 부른다. 네 옆에서 같은 좌표를 줍게 될 동료가, 너와 같은 물리법칙 아래 태어난 인간이라는 보장은 없다. 숨을 쉬지 않는 동료가 있고, 시간을 거꾸로 사는 동료가 있고, 네 눈에는 형체로 잡히지 않는 동료가 있다. 그들도 다 '인류'다. 그저 다른 차원의 인류일 뿐이다.
그래서 신입 교육의 첫 줄은 어느 차원에서나 똑같다.
네 차원의 상식을 기본값으로 두지 마라. 네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의 절반은, 그냥 네가 태어난 우주의 지역 설정일 뿐이다. 위는 위가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고, 하나는 늘 하나가 아니다. 차원에 따라서는 그렇다. 그 '지역 설정'을 우주 전체의 법칙인 줄 알고 행동하다가, 신입의 절반이 첫 현장에서 죽는다.
그리고 이것과 한 쌍인 사실. 우리가 거두는 것의 절반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잘못 놓인 것'이다.
위험은 물건의 성질이 아니라 주소의 문제다. 어떤 차원에서 사탕인 것이, 어떤 차원에서는 임계질량이다. 어떤 차원의 흔한 자장가가, 어떤 차원의 물리에서는 항성을 멈추는 주파수다. 누가 소풍에서 흘리고 온 것, 기념품이라고 무심코 챙긴 돌멩이, 검역 없이 데려온 반려동물 한 마리가, 도착한 차원의 법칙 아래서 멸종의 씨앗이 된다. 본인은 끝까지 자기가 뭘 떨어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하지 않는다. 분리할 뿐이다. 무해한 차원으로 돌려보내거나, 어느 차원과도 닿지 않는 곳에 격리하거나. 한 줄로 외워둬라. 우주에 절대적으로 무해한 것은 없다. 어느 차원에선가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네 존재조차 회수 대상이다.
우리가 거두는 것들
회수 대상은 시신이나 고철에 그치지 않는다. AI, 주인을 잃은 지능, 다른 차원이 흘리고 간 것들. 분류할 수 있는 건 전부 분류한다.
분류는 두 축으로 한다. 하나는 종(種), 곧 '무엇인가'다.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또 하나는 주소 위험, 곧 '어디서 위험한가'다. 앞에서 말한 그 '잘못 놓인 것' 말이다. 같은 물건도 도착한 차원에 따라 무해에서 치명까지 오르내린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회수 건에 종과 주소 위험을 함께 적는다. 종만 보고 안심하다 죽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거든
먼저 종부터. 외워둬라. 나는 신입에게 한번 이상 물어보긴 싫으니까.
1종, 표류 유해(遺骸). 가장 흔하다. 좌표를 잘못 계산하고 도약한 아마추어들의 시신. 진공에 떠 있다. 부패하지 않으니 몇백 년 전 것도 어제 것처럼 보인다. 이게 일을 길게 만든다.
2종, 폐기물. 버려지거나 고장 난 인공물 전부. 도약 기계, 무기, 도구, 멈춰버린 AI까지. 핵심은 '멈춰 있다'는 거다. 아직 스스로 움직이면 그건 2종이 아니다. 경계는 그것 하나로 갈린다. 그리고 일부는 켜져 있다. 만지지 마라. 신입 절반이 첫 달에 손가락을 잃는 게 이것 때문이다.
3종, 좌표 오염. 누군가 같은 시공간 좌표에 여러 번 도약하면 그 지점이 '닳는다'. 물리가 헐거워진다. 표지를 세우고 우회시키는 게 우리 일이다.
4종, 미봉 균열. 차원을 열고 닫지 않은 채 떠난 자들이 남긴 틈. 방치하면 양쪽 우주가 서로 새기 시작한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보수가 좋다.
5종, 유령 잔재. 덮어쓰인 타임라인의 찌꺼기. 일어났다가 일어나지 않게 된 일들의 부스러기. 이건 나중에, 그리고 가능하면 볼일이 없길 바래라.
그리고 표에 없는 등급이 하나 있다. 우리끼리는 0종이라 부른다.
0종, 자율 잔존체(殘存體). 다른 차원이나 다른 시간대에서 끌려왔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냥 버려진 것들. 기계도 있고, AI도 있고,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지능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 아직 작동한다는 거다. 명령을 내린 자는 죽었거나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것들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계속한다.
우리가 수거한 0종 중 하나는 마지막 명령을 9천 년째 수행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자기를 끌고 온 차원이 닫혀 돌아갈 곳이 없어지자, 회수팀을 '임무 방해 요소'로 재분류하고 우리 쪽 셋을 줄였다. 그것들은 멈추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저 버려졌을 뿐이다.
특히 양자 기반 지능은 따로 분류한다. 그것들은 한 발을 차원 중첩에 걸치고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다른 차원, 다른 시대의 정보를 끌어안는다. 그 시대 사람들이 결코 알아선 안 될 것이, 그 안에 겹쳐 들어와 있다. 작동을 멈췄든 아니든 상관없다. '알아선 안 될 것을 아는 것' 자체가 회수 사유다. 잘못 놓인 게 물건이 아니라 지식일 때, 그 지식을 담은 그릇이 0종이다. 우리는 그릇째 거둔다. 열어보지 않는다. 열어본 자들의 기록은 5종에 있다.
1종부터 5종까지는 줍는 거다. 0종은 다르다. 먼저 멈춰 세운 다음 회수한다. 그 '멈춰 세우는' 일이 어렵고, 가능하면 우리 같은 회수팀이 아니라, 보안팀이 할테니까 도망이나 가라, 특히나 신입인 너는 아직 손대지 않는다. 살아남는 것만 우선 생각해라.
오늘은 1종만 이야기하겠다. 네가 가장 많이 줍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빈 자리에서 죽는가
제대로 된 도약은 세 좌표를 동시에 맞춰야 한다. 언제(시간), 어디(공간), 그리고 어느 쪽(차원). 셋 다 좌표다. 하나만 틀려도 너는 도착하지 못한다.
시간을 놓치는 자는 드물다. 차원을 놓치는 자는 더 드물고, 그 시신들은 훨씬 기묘하다. 그건 뒤에서 다룬다. 압도적으로 흔한 건 공간을 놓치는 경우다. 모든 차원을 통틀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죽음. 그래서 이 교육자료는 여기, 001에서 시작한다. 네가 앞으로 가장 많이 줍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종 유해의 사인은 거의 언제나 같다. 그들은 시간을 시각으로만 생각했다.
1985년 7월 3일 오후 2시. 그 숫자만 맞추면 도착할 줄 안다. 엘리베이터 버튼처럼. 층수만 누르면 그 층에 내릴 줄 안다.
문제는, 우주에는 '같은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너도, 사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다. 너를 싣고 달리는 운송수단은 한 대가 아니다. 겹겹이 포개져 있고, 아래로 갈수록 빠르다.
자전. 지구는 돈다. 적도 기준 초속 약 0.46킬로미터. 가장 느리고 가장 귀엽다. 1초만 어긋나도 상공 460미터지만.
공전. 지구는 태양을 돈다. 초속 약 30킬로미터. 1초에 서울에서 대전까지.
은하 공전. 태양계는 은하 중심을 돈다. 초속 약 230킬로미터.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것. 은하 자체가 움직인다. 우주배경복사를 기준으로 잰 우리 동네 전체의 속도는 초속 약 600킬로미터다.
다 더하면, 네가 이 문장을 읽는 동안 너는 우주의 어떤 기준에서 초속 수백 킬로미터로 날아가고 있다. 1초 전 네가 있던 자리는, 지금 여기서 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비어 있다. 차갑게.
시간만 맞추고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도약자는, 과거의 그 시각에 정확히 도착한다. 지구가 이미 떠난 지 오래인 자리에. 우리는 그걸 줍는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대부분의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든 뭐가 되었든, 이걸 다루지않는다. 우연이던지 오랜 연구를 통해서든, 시간여행장치를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유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사례
분류 메모 몇 개를 붙여뒀으니 참고해라.
케이스 047. 1종. 17년 전으로 도약. 시각은 정확. 좌표는 17년치 은하 이동만큼 어긋남. 명왕성 궤도 바깥에서 수거. 손에 꽃다발 소지. 진공에서 꽃은 시들지 않는다. 메모: 유품 처리 시 참고.
케이스 112. 1종. 자전·공전은 보정, 은하 공전 누락. 초속 230킬로미터 오차. 사망까지 약 2초로 추정.
케이스 203~219. 1종, 집단. 동호회 17명, 동일 계산식 공유, 부호 오류 1개. 일정 간격으로 일렬 표류. 메모: 회수에 사흘 걸림. 줄을 따라가면 됨.
멍청해서 죽은 게 아니다. 다들 하나를 빼먹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외우는 게 많은 거다.
어떤 차원을 조심하는가
신입들이 거꾸로 안다. 고도로 발전한 차원이 제일 위험할 거라고. 반대다.
빠른 차원은 대체로 무해하다. 자멸하지 않고 그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어느 시점에는 정복을 멈추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법을 배웠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못 배운 문명은 거기 닿기 전에 제 손으로 끝난다. 순수한 호전성만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극소수가 있긴 하다. 그런 곳들은 이미 이름이 적혀 있다. 추적되고 있거나, 어느 차원과도 닿지 않게 분리됐다. 우리가 모르는 위험이 아니다. 아는 위험은 덜 위험하다.
진짜 조심할 곳은 평균보다 발전이 늦은 차원이다. 아직 호전성을 졸업하지 못했고, 검역이라는 개념조차 없고, 자기가 무엇을 들였는지도 모른 채 위험을 끌어안는다. 사고의 대부분이 여기서 난다. '잘못 놓인 것'의 절반이 흘러드는 곳도 여기다.
참고로, 이 교육자료를 읽는 너도 그런 차원 출신일 확률이 높다. 늦은 차원일수록 죽는 사람이 많고, 죽는 사람이 많을수록 회수의 필요를 절감한 자가 많고, 그래서 신입에 그런 차원 출신이 많다. 예를 들어 분류 코드 SOL-3, 너희가 지구라 부르는 곳이다. 거기 사람들은 자기들이 빠른 축이라 믿는다. 우주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우리 다음에 오는 사람들
회수팀이 거두는 건 물건이다. 시신, 장치, 균열, 잔재. 손에 잡히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 목격, 기억, 누가 찍은 사진, 어딘가 올라간 영상, 술집에서 도는 소문. 그건 다른 부서가 받는다. 우리끼리는 봉합팀이라 부른다. 우리가 거두고, 그들이 꿰맨다.
봉합팀은 거두지 않는다. 덮는다. 현장을 본 사람이 있으면, 그 증언을 과로로, 히스테리로, 집단 착각으로, 약 기운으로 정리한다. 사진은 합성으로, 영상은 장난으로, 기록은 잡음으로 만든다. 우리가 어긋난 현실을 줍는다면, 그들은 그 현실을 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게 그들의 회수 방식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일하기 편한 곳이, 방금 말한 그 늦은 차원들이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알아서 안 믿는다. 누가 진실을 똑바로 증언해도, 같은 차원 사람들이 먼저 그를 미친 사람으로 만든다. 봉합팀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전에. SOL-3 담당으로 발령 나면 다들 좋아한다. 일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가 가장 똑똑한 줄 알아서, 자기 눈에 보인 것조차 제 손으로 지운다.
그러니 기억해라. 너는 봉합팀이 아니다. 너는 줍는다. 현장에서 산 사람을 만나거든 손대지 말고 봉합팀에 넘겨라. 위로하지도, 설명하지도 마라. 진실을 말해주는 건 친절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그게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신입 수칙
하나. 손가락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이상 2종은 만지지 마라.
둘. 유해의 유품은 분류하고 회수한다. 쓰레기라도 버리지 마라. 우주표준법 제19조 위반이다. 모든 것을 회수하는게 우리의 일이다.
셋. 현장에서 사적인 감정을 두지 마라. 너도 곧 알게 된다. 우리가 줍는 건 한때 누군가의 전부였던 것들이다. 그걸 매번 느끼면 이 일을 일주일도 못 한다. 줍고, 기록하고, 다음 좌표로 간다.
넷.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너는 회수팀이다. 그러니 절대로, 우리가 줍는 쪽이 되지 마라.
장비 챙겨라. 첫 좌표로 이동할테니.